세간에서는 마법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마법은 악마로부터 빌린 힘이며 마법사들은 재앙이 깃든 인간이라고… 이해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이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위협이 될 것이기에 줄곧 두려움과 경계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박해로 인해 마법사들의 수가 점점 줄어 이제는 세상에서 마법적인 힘을 가진 이들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우리들은 이렇게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렇게 여기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법의 역사 개론, 서장]
마법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이며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적과도 같다.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마법이라 칭하니 마법의 힘은 시대에 따라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한때 마법사들이 보유한 힘을 아낌없이 발휘하고 연구와 토론 역시 활발하던 ‘현자의 시대’가 존재했다고 하나, 약 천이백 년 전 마법사들과 마법의 힘을 가지지 않은 자들 사이에 일어난 마법대전에서 마법사들이 패배한 이후부터 찬란하던 마법의 시대는 저물었고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마법사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마법의 힘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은 사람들이 마법사를 증오하고 배척하게 했기에 강한 능력을 가진 마법사들조차 척박한 땅에 스스로를 유폐시킬 수밖에 없었다. 오랜 박해로 인해 현시대 팔레로네 대륙에 남은 마법사들의 세력은 한없이 한미하며, 그나마 존재하는 마법사들은 각 국가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간다.
마법사들에 대한 감시는 그 대상이 아동이라 할지라도 예외가 없다. 오히려 미성년 마법사들이 성인 마법사들에 비해 더 위험한 존재로 여겨질 때가 많은데, 그 힘이 예상치 못하게 발산되거나 마법을 제어하지 못해 큰 위험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모든 미성년 마법사들은 국가에서 지정한 시설에 수용되어 마법의 힘을 억제하기 위한 훈련을 수행한다.
◈ 마법에 대하여 ◈
마법에는 속성이 있다. 기본 4원소 속성이 빛과 어둠으로 세분되어 총 8가지로 분류되는데, 이는 나르메르교에 존재하는 각 속성을 관할하는 신성과 일치한다. 대륙 내의 보편적인 편견과는 달리 빛과 어둠 속성 중 한쪽이 더 선하거나 삿되지는 않다. 빛 속성은 전반적으로 무언가를 가하거나 발산하는 계통의 마법이며 어둠 속성은 감하거나 안으로 내재하는 계통의 마법이다. 예를 들어, 불을 피우는 마법은 빛 속성 불 마법이며 끄는 마법은 어둠 속성 불 마법에 해당한다.
제한 역시 존재한다. 즉사 마법, 키메라 제작을 포함한 생물 창조 마법, 생물의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 생물을 영구적으로 변형하는 마법은 금지되어 있다.
감정 조작 및 기억 조작 마법과 복제 마법은 상급 마법사들 사이에서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되며, 이 역시 기본적으로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 마법사에 대하여 ◈
마법사들은 자신들을 기억하는 자라고 부른다. 밤의 신 나르메르와 잊힌 여덟 신, 그를 비롯한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마법사가 아닌 자들은 망각한 자라 부른다. 하지만 이 호칭은 마법사 사회 내에서만 사용되며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기억하는 자들 중 특히 나이가 많고 지혜로운 현자들에게는 기록자의 호칭이 주어진다. 이는 마법사들이 가장 오랜 기억을 이어 오는 현명한 자에 대한 존경과 경외를 담아 부르는 이명이다. 기록자들과 그들을 보좌하는 상급 마법사들로 이루어진 나르메르의 펜이라는 집단이 마법사들의 수뇌부 역할을 하며 이들을 중심으로 마법 사회가 구성된다. 해당 단체는 정치 기구보다는 협회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마법사들의 기대수명은 일반적인 인간들의 수명을 훨씬 웃돌아 150세까지는 너끈히 살 수 있지만, 여러 요인으로 인해 평균 수명은 80세에서 100세 사이에 그친다. 일반적으로 100세가 넘은 마법사들은 한순간 증발하기라도 한 듯 모습을 감추고 사라진다. 이에 대해서는 무수한 소문이 돌고 있으나 검증된 것은 없다.
오래 전에는 마법사들과 비마법사가 공존하던 시기가 있었으나 현자의 시대 끝물에는 일부 마법사들이 비마법사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시도가 빈번히 발생했다. 마법대전 종전 이후 나르메르의 펜에서는 이 점을 전쟁의 원인으로 지적하여 맹약 등을 통해 마법사들을 일반 사회로부터 격리했다. 그러나 맹약을 어기고 범죄를 저지르는 마법사들만이 비마법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으므로 이는 대중의 인식이 악화된 주원인이 되었다. 역사에 기록된 마법사들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마저도 대부분이 범죄자였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마법사를 강하되 사악한 존재로 인식한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일반 사회에 더더욱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 계승과 발현 ◈
마법은 크게 네 가지 방식으로 계승되거나 발현된다.
마법이 발현되는 시기나 계승을 받을 수 있는 시점은 10세 이전이라는 점이 공통적이다.
1.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힘이 유전되어 넘어가는 방식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경우 마법사 부모 한 명당 자식 한 명에게서만 힘이 발현된다. 예를 들어, 양친 중 한 사람만 마법사이며 첫째가 10세 이전에 마법적 능력을 보이는 경우 둘째나 셋째는 반드시 비마법사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둘째가 첫째보다 먼저 능력을 드러낼 시 첫째에게는 마법적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2. 대상을 지목하여 마법을 넘겨주는 방법이다.
피계승자를 선택할 수 있으나 마법적인 힘을 넘겨준 마법사는 이후 능력을 소실한다. 마법사 사회에 적을 둔 마법사 입회인 3인이 동의하고 의식에 참여해야만 마법을 계승할 수 있다.
3. 특정 트리거가 발동하여 마법이 자동으로 계승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마법을 넘겨주려 하는 마법사는 마법을 계승 받을 대상을 선택할 수 없다. 계승의 조건은 기존에 힘을 가진 자가 내건 것에 따라 다양하나, 그 조건의 발현은 마법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트리거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죽음 없이 마법의 계승이 이루어지더라도 기존 마법사의 능력이 소실되지는 않는다. 계승은 마법사의 일생 중 단 한 번만 이루어질 수 있다.
4. 비마법사 부모를 둔 아이에게서 대단히 희귀한 확률로 마법이 발현되는 경우가 있다.
그 기준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누군가에게 힘을 물려주지 않고 사망한 마법사의 마력이 무작위로 옮겨가 전해진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마법이 배척받는 관계로 마법의 계승은 사실상 저주로 여겨진다. 저주의 작동 원리가 알려지면 다시 마법사 사냥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계승에 대한 구체적인 원리는 기억하는 자들 사이에서 비밀로 유지되며, 모든 성인 마법사는 죽음의 맹약을 통해 해당 정보를 망각한 자들에게 넘기지 않고 비밀을 지킬 것을 약속해야 한다.
트리거 발동으로 인해 마법이 발현되거나 무작위로 마법이 발현되면 대상자가 관리 대상 미성년 마법사 목록에서 누락될 가능성이 있다. 마법사들을 저주받은 이들로 받아들이는 것이 대륙의 보편적인 인식이므로, 미성년 마법사가 마법 사회 바깥에서 살아가는 것은 당사자에게도 대단히 위험한 일로 간주된다. 그 때문에 해당 방식으로 마법이 발현된 아이가 있을 시 이를 감지한 나르메르의 펜에서 담당자들을 파견한다.
접촉은 당사자와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발현 직후 최대한 이른 시일 내로 이루어진다. 이때 파견되는 이들을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라 하여 흰비둘기라 부른다. 해당 과정에서는 무엇보다도 미성년 마법사의 안전을 우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