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끊는 엄격
" 당신이 틀렸어. "
에녹
Enoch
Age 18 · Height 211cm · Weight 109kg
남성 · 오르게 출신
NONA
ATK 5 · DEF 55 · HP 250 · MP 100
비나의 깃발 | 굳건한 방패 | 첨예한 용기
Appearance
외관
섬광처럼 흰 날이 허공을 베었다. 그는 벽을 닮았다. 장대한 체격이 시선을 가린다. 탁한 붉은색의 눈동자. 군청색의 머리카락은 한데 모아 묶었다. 흉터는 여전히 얼굴 가운데에 드리워 있었으나, 그것은 이제 덩굴의 무늬처럼 어울렸다. 고향에서 가져온 망토를 두르고, 안에는 무채색의 셔츠나 조끼를 입었다.
Personality
성격
고요, 침잠, 다정 / 신념 / 상실과 추억 / 완성된 엄격 / 균형의 확립 / 이중적인
한 줄기의 길이 있었다. 까마득한 암흑 속에서 뻗어나온 흰 빛을, 그것만이 유일하다고 믿었다. 실로 맹목적이다. 각인처럼, 아이는 불변의 진리를 좇는다. 종교의 계명과 부모의 가르침을 따르듯, 규율의 수용에는 분별이 없다. 미성숙한 소세계는 유일을 재료로 구축된다. 진리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미완의 세계는 완성을 위하여 한 차례 파괴된다. 둔중한 벽을 깨고, 굳센 고집을 꺾고, 타인의 존재를 확인한다. 유년의 상실이다. 이제까지의 믿음을 모두 부정하고 격변을 견디어 낸다. 가능성의 존재를 인정한다. 진리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확인하고,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어이 수용한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부모의 권위가 무너진다. 내면의 세계에서 탈피해 외부로 뻗어나가는 과정은 실로 고통스럽다. 극심한 성장통이다.
꺾이지 않는 신념은 간편하다. 자기 긍정은 편리하다. 고민과 성찰이 부재하는 세계는 안락하다. 하지만 금을 깨고, 알 바깥을 본 이상 성장은 필연으로 덮쳐 오른다. 안주는 용납되지 않는다.
처음으로 주어진 선택의 길목이 사뭇 낯설다. 자유는 아름답지만 무겁다. 산란하는 빛에 시선을 걷잡을 수 없다. 그렇기에 방황한다. 갈림길을 앞에 두고 멈추어 선다. 나아가지 못하고 고민한다. 선택과 책임의 무게를 체감한다. 그리하여 에녹은 끝내 침잠한다. 일시의 유예다. 유년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도기적 순간에서의 정체.
침잠은 고요의 형태를 띈다. 발화는 존재하지 않고 의견은 억눌린다. 일종의 관찰이 이어진다. 외부 세계를 탐색하고, 선택의 옳고 그름을 이루 셈한다. 침묵이 실로 다정하다. 무조건적인 수용은 친절의 온화한 빛깔로 채색된다.
복제에 불과했던 신념이 퇴색하고 이그러져 결국 무너진다. 겨우 대체품에 불과했던 껍데기는 의미를 모두 소실하고 마모되며 끝끝내 버려진다. 이제 모방의 시기는 끝났다. 그는 어떠한 의무의 압박을 느낀다. 신념, 뚜렷한 자립, 온전한 자아의 소유. 더 이상 남이 비추는 길을 따라 걸을 수 없다. 타인의 신념은 수용 가능하되 불가해하다. 일직선의 이상은 현실의 궤적과 영원히 교차한다. 아이는 스스로 걷는 법을 배운다. 수많은 고비를 감내하며 닳고, 꺾기고, 휘어져, 올바름에 근접하기 위해서. 앞길을 조명하는 것은 그의 몫이다. 에녹은 드디어 추종하지 않는다.
그렇게 유년과, 맹목과, 신념을 상실하고 또 추억한다. 그는 아이와 어른 사이의 기로에 서 있다. 성장은 서서히 이루어진다. 에녹은 마지막 단계를 앞두고 뒤를 돌아본다. 순리대로 과거는 깎이고 빛바래 추억으로 방울방울 맺어진다. 가공된 기억은 슬픔과 기쁨을 가리지 않고 멋대로 윤색되어 아름답다. 어떤 고통과, 한 때의 공포와, 한날의 꿈이 온통 뒤섞여 좋고 싫음을 분간할 수 없다. 고정되어 변치 않는 과거를 두려워할 까닭 없다. 이제 그는 지금껏 걸어온 발자국을 추억으로 곱게 박제한다. 얽매이지 않되 그리워한다. 해방과 보존이 양립한다.
그리하여 마지막을 걸어갈 채비를 마친다. 존재의 소멸까지 이어질 항로를 설정한다. 긴 여행을 예감한다. 진실이란 무지개의 밑동과 같아 영영 닿을 수 없음을 안다. 그럼에도 끝나지 않을 여정을 시작하는 것은 종결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다. 나아가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았다. 멈출 수 없는 걸음으로 그 자신의 엄격을 더욱 단단히 하기 위해서다. 그는 엄격을 날카롭게 벼려 앞날과 정면으로 맞선다. 눈보라 속에서도 부러지지 않기를 갈망하며 완성을 시험하고 엄격을 담금질한다.
Other
기타사항
그 동안의 일
1255년. 반나절의 짧은 외출을 다녀왔다. 기쁜 낯으로 나섰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은 듯 돌아오는 얼굴이 심상치 않다. 실망과 배신, 얄팍한 안도와 여러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뒤섞여 고스란히 새겨지나, 내색하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생활한다. 다만 훨씬 얌전하고 진중하다. 어느 순간을 되새기듯 허공을 보는 날이 길어진다. 학업을 손에 놓고, 매사에 부진한 행태를 보인다.
1256년 여름. 한 통의 편지를 받고 고향 마을 일 르 셰펠에 다녀왔다. 첫 귀향이다.
방학 중 긴 외출을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동기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른 새벽 조용히 길을 나섰다. 고향에서 짧은 방학을 보낸 뒤 아슬한 시일에 귀환했다. 한 손에는 한 벌의 망토와 사진을, 나머지 손에는 지팡이와 작은 짐가방을 들었다. 에녹은 새벽이면 고향에서 가져온 사진을 들여다 본다. 귀퉁이가 구겨진 사진 속에는 그와 전혀 닮지 않은 아이가 서 있다.
2월 15일 생, 오르게 남동부에 위치한 바닷가 마을 일 르 셰펠 출신. 양친과 다섯 명의 오누이. 양동생.
일 르 셰펠과 쿤츠 Kunz
일 르 셰펠은 오르게의 미덕과 부정을 고루 간직한 마을이다. 한적하고 평화롭다. 그리고 배타적이다. 바닷가를 마주한 일 르 셰펠은 어업과 화훼업, 그리고 약간의 목축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절벽을 따라 놓인 철로와 간이 기차역을 두고, 싱싱한 튤립과 코스모스, 장미와 백합을 수도로 실어보내 은화를 벌었다.
일 르 셰펠에 악재가 연이어 닥친 것도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이다. 마력 고갈과 팔레로네의 검이 대륙을 휩쓸기 전부터 그들은 이미 불행에 익숙했다. 그래서 일 르 셰펠은 변함이 없다. 꽃은 말라 비틀고, 곳곳에 역병이 돌았다. 그 전에는 배가 난파하고, 온실이 무너졌다. 한결같은 불운이다. 서서히 목을 조이는 재난에 단련되어 체념하고 안주한다. 가난과 메마름에 잠식되어, 일 르 셰펠은 역설적으로 불행에 노련하다. 그래서 평온하다. 그렇게 생존한다.
쿤츠Kunz는 일 르 셰펠에서 수십, 수백,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평민이나 지역의 유지였던 쿤츠가 영락한 것은 일 르 셰펠의 악운과 함께였다. 바다가 보이는 백색의 가옥이 낡아 무너져 흉물스럽다. 이전의 기세는 쇠퇴해 초라하다. 하지만 아직 누울 곳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다. 곳곳이 황폐한 지금, 상대적으로 나은 형편이다. 그럼에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은 풍요로웠던 기억이 족쇄가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잃은 것이 더욱 안타깝고 배부른 자가 탐욕스럽기 마련이다. 아직 갈망할 힘이 남아있기 때문에, 열렬히 분노한다.
쿤츠 부부의 막내 아들이 마법사가 되어 마을을 떠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 작은 마을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친인척과 이웃들은 쿤츠 가족을 동정했다. 세상에, 그 악마가 선량한 아이를 물들인 거예요. 괴물이었던 아이는 추억 속에서 미화되고, 안타까운 희생양으로 둔갑한다. 원망의 대상이 전이되자 눈에 보이지 않는 핏줄은 말 몇 마디로 손쉽게 단장된다. 마법의 여파가 대륙을 휩쓸어도 한 번 박제된 연민은 쉽게 변치 않는다. 죽은 자를 모욕하지 않듯, 이미 사라진 사람은 변화의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남은 것은 에녹이 아니라 쿤츠 가족이었다. 그들이 비록 막내 동생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쿤츠 가족은 여전히 온실을 몇 채 가지고, 배를 몇 척 가지고, 목청 큰 젊은 자식을 네 명이나 데리고 있었다. 아무튼 눈 밖에 나서 좋은 상대는 아니었다. 그렇게 일 르 셰펠에서 마법은 삿된 것, 그리고 병이 되었다. 병자는 동정을 받는다.
말은 너무나 쉽게 달라지고, 퇴색되고, 다시 살아나고, 넘실넘실 퍼진다.
몇 년 전, 그러니까 한 1254년 겨울, 쿤츠 부부는 떠돌이 애를 양자로 들였다. 마법의 재능을 보여 쫓겨난 아이였다. 저런, 불쌍해라. 우리의 잃어버린 아이가 생각나는구나. 그렇지 않아도 자식들이 다들 출가를 해서 적적했는데. 우리 집에서 살지 않으련. 어차피 사 년 정도만 지나면, 그러니까 가장 이쁜 때만 귀여워하고 나면, 떠날 테니까. 참 모든 게 쉽다.
: 에녹, 그는 한 번 성을 빼앗겼다. 어차피 좋아하던 것도 아니었다. 마음대로 빼앗고 주는 것이 탐탁찮을 리도 없다. 그럼에도 돌려받은 것은 어쩌면 간절할, 하나의 연결고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 자신을 에녹 쿤츠라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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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5년 이후 학업에 거의 손을 놓았다. 차차 다시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범상한 재능으로 지나간 진도를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유일하게 성과를 보이는 것은 소환술. 소환술에는 재능도 있고, 또 이것만큼은 꾸준히 정진했다. 특히 불속성 마법에 능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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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시간에는 주로 체력 단련에 열중했다. 검술이나 격투술 등 체술도 해보려고는 하는데, 배움이 없어 동작이 어설프다. 스태프 또한 검 모양으로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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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는 출입을 하지 않다가, 최근 들어 종종 찾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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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천장이나 문턱에 머리를 부딪히는 일이 있어 수그리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