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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아. "
에녹
Enoch
Age 14 · Height 188cm · Weight 85kg
남성 · 오르게 출신
NONA
ATK 5 · DEF 25 · HP 160 · MP 70
비나의 깃발 | 굳건한 방패
Appearance
외관
붉은 시선이 내리꽂혔다. 위에서 아래로, 수직의 형상이 잔상을 남긴다. 그것은 더이상 허공을 응시하지 않았다. 번득이는 눈동자가 상대의 낯을 바로 보았다. 익숙하고 태연하며 어쩌면 뻔뻔한 관찰. 탁한 눈빛 속에 맺혔던 공포와 두려움은 비워졌고 서투르게 내비추던 속내도 간데없다. 몇 년 사이 훌쩍 자란 키처럼, 낯선 원숙함이 빈 자리를 메꿨다.
아이는 드물게 컸다. 나이에 비해, 그러한 수식어가 더는 필요하지 않았다. 곧게 뻗은 등과 다리가 사뭇 위협적이다. 아직 어린 정신임에도 신체는 성인과 비견했다. 그마저도 다 자란 것이 아니었다. 에녹은 종종 거인이 된 자신을 상상했다. 즐거운 미래는 아니었다. 전날 흉터를 머리카락으로 가렸듯이, 그는 자주 뒷목을 쓸어 키를 낮췄다. 무용한 몸짓이었다.
많은 것이 달라졌고 많은 것이 그대로였다. 아이는 빠르게 자라고, 그만큼 변했다. 높아진 시야와 성숙한 품행이 그랬다. 반면 얼굴의 흉터는 변치 않는 것 중 하나였다. 세월이 흘렀으니 옅어질 법도 한데, 흠은 갈수록 깊고 또렷하게 존재를 더했다. 잊어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지워지지 않는 자국들. 그럼에도 에녹은 전날과 달리 당당하다. 그 증거로 머리카락을 걷었다. 그는 수치를 지웠고, 더이상 자신의 존재를 부끄러워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군청색 머리카락을 반은 뒤로 둘러 묶고, 나머지는 늘어뜨렸다. 얼굴을 가리던 머리카락은 길러 옆으로 넘겼다.
드러난 얼굴에 담긴 표정은 전보다 다양하다. 무표정, 혹은 작은 미소, 돌발적으로 내비치는 순간의 감정들에서 나아가 이제는 많은 것들을 눈과 입으로 그린다. 또렷한 선들이 알기 쉬우면서, 동시에 어렵다. 모든 것이 진실로서 맺히지 않기 때문이다. 저 명명백백한 눈물이 정말로 슬픔을 의미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Personality
성격
여유 / 순종과 굴종 / 상실 / 엄격의 성장 / 폐쇄적인 / 꾸며진 천연함 / 한정된 애정
에녹은 서서히 깨닫는다. 나티에르에서, 이 울타리, 그에게 용납된 단 하나의 폐쇄적인 세상 안에서 그는 안전하다. 이곳에서는 당장의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처음에는 방황했다. 제 손에 쥐어진 선택지에 당혹하고, 그것을 버겁게 여겼다. 하지만 조금 헛디뎌도 괜찮다. 길을 잘못 들더라도 그를 지탱해줄 사람들이 곁에 있다. 벅차고 두려운 애정이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마침내 인정한다. 이곳에서 그는 자유롭다. 단순한 신체의 자유만이 아니다. 정신적인 자유, 온전한 독립이다. 아직도 이 해방이 낯설고 무섭지만, 그 때처럼 조급하지는 않다. 에녹은 여전히 천천히 걷는다. 그렇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두려움에 떠밀려서 사는 삶이 아니다. 제 발로 걸으며 그간 놓쳤던 삶의 의미를 거두어 들인다.
그는 순종하고 굴종한다. 이전의 복종에서는 에녹, 그 자신이 부재했다. 그는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남에게 선택을 떠넘겼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는 자발적으로 복종을 선택한다. 복종의 주체는 본인이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짊어진다. 신뢰하되 의존하지 않는다. 공존의 방법을 찾는다.
존재를 인정한다. 타인의 시선에 움츠러들지 않는다. 수치와 죄책감. 본인도 깨닫지 못한 수치에 잠식되었던 유년기에서 벗어나, 과오의 본질에 집중하기로 다짐했다. 다소 극단적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수치를 완전히 상실하지는 못할 것이다. 눈치를 살피던 날들이 어느새 습관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은 조금 잊어도 괜찮다. 과도한 자책은 덜어낼 시기다.
그로써 자신을 소중히 하는 법을 배웠다. 능력을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구나. 반드시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희생과 자립, 자존과 배려의 선을 찾아간다. 물론 아직 어설프다. 앞으로도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할 것이다. 그러나 넘어져도 괜찮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다. 한때 길을 잘못 든다 하더라도 도로 찾아올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
내면의 선도 성장했다. 그만의 심지와 고집, 엄격. 벽돌을 쌓아 올리듯 갈무리한 그의 반짝이는 조각들. 마음 속 성채는 지금껏 지나온 삶의 궤적에서 특별히 아름다웠던 파편들로 이루어진다. 항상 손에 쥐고 다니는 수첩은 구체화된 파편의 흔적이다. 여러 해를 거쳐 쌓아 올린 그의 엄격은 언젠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날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에녹의 선은 필연적으로 폐쇄적이다. 그의 세계는 나티에르에 한정되었고, 그의 사고도 그 밖을 뻗어나가지 못한다. 그의 애정도 마찬가지다. 에녹은 이제 조건 없이 사랑을 바라거나 베풀지 않는다. 그의 종이는 더이상 백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한정없는 애정은 주변 세계로 한정된다.
요즈음의 에녹은 제법 뻔뻔하고 태연하다. 천연하게 거짓된 표정을 짓는다. 악의에서 빚어진 간계는 아니다. 남과 어울리기 위한 가면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익숙해지면서, 사이의 경계를 발견하면서, 정직만이 길은 아님을 알았다. 어떤 순간에는 허울 좋은 거짓이 유효하다. 솔직함이 비수가 될 수 있기에 눈을 감는 법을 배웠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있다. ‘이 선을 넘어도 내쳐지지 않는다.’ 새로운 유흥이다. 좋지 못한 버릇임을 알면서도, 거듭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집단에 속했음을 감각하기 위해, 능청스러운 장난을 저지른다.
Other
기타사항
2월 15일 생, 오르게 남동부 출신.
이드리스와 연결이 두절되었다. 신입생 때부터 곧잘 편지를 보냈고, 방학 때면 종종 그를 찾아가기까지 했는데, 언젠가부터 답장이 오지 않기 시작했다. 참다 못해 직전의 방학에는 이드리스를 찾아가기까지 했지만, 방문하는 족족 외출 중이어서 만나지 못했다. 집은 어지럽고, 사람은 없고...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걱정이 된다. 나티에르 밖에서 아는 사람은 이제는 그 뿐인데.
신입생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추운 것을 싫어하고, 아침이면 산책을 빙자한 운동을 가고, 자주 감기에 걸리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다닐 만큼 건강하고, 땅을 차는 버릇이 있고, 남의 상처에 예민하고, 종교는 잘 모른다.
여전히 말이 느리다. 문장을 뱉을 때 항상 고심하지만, 아직도 가끔 실수를 한다. 그럴 때마다 더욱 조심스럽다. 한 번 지나간 이야기도 계속해서 복기한다. 그의 수첩도 어느새 여러 권이 되어 책상 한 켠에 하나둘 쌓여가는 중이다. 느린 만큼 확실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만 전처럼 ‘불가피하게’ 느린 것은 아니라서, 내키는 때에는 얼마든지 빠르게 내뱉는다. 그리고 시치미를 뚝 뗀다. 주로 장난을 일삼을 때가 이렇다. 주변의 배려에 버릇이 나쁘게 들었다.
대식가. 쑥쑥 자라는 만큼이나 잘 먹는다. 키가 더 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언젠가는 자제를 시도한 적도 있지만... 장렬하게 실패했다.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먹는다. 편식도 하지 않는다. 뭐든 잘 먹어서,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 나오는 날을 좋아한다. 그런 날은 음식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처치곤란한 잔반을 맛있게 먹어 치우는 것으로 식당 관계자들에게 평판이 좋다.
공부에는 영 흥미도 소질도 없다. 수업 시간이면 자주 존다. 땡땡이는 치지 않지만, 책상에 엎드려서 잘 거면 왜 수업은 들어오는지 의문이다. 그나마 열성적인 건 소환술. 마법의 역사는... 빽빽한 글자를 보면 머리가 아프다. 아무래도 공부로 먹고 살 팔자는 아니라며 자주 한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