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 에녹으로 불러줘. "
에녹
Enoch
Age 10 · Height 157cm · Weight 강파르나 단단함
남성 · 오르게 출신
NONA
ATK 5 · DEF 10 · HP 80 · MP 60
비나의 깃발
Appearance
외관
검붉은 궤적이 세 갈래로 얼굴을 가로질렀다. 패인 틈을 따라 그림자가 흘렀다. 이마부터 턱 끝까지. 얼기설기 엉킨 흉터는 거미의 다리를, 혹은 죽은 나무의 가지를 닮았다. 또렷하고 흉측하다. 밉고 꺼림칙하다. 날붙이에 베인 자국이 아니었다. 틈새는 짐승의 발톱에 짓찢긴 것처럼 일그러졌고 거칠었다. 당시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보기에 괴로웠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흔적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상흔만을 기억했다. 다른 모든 것은 쉽게 지워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에녹은 거기에 있었다. 강파르고 투박한, 초라한 모습이었다. 찢어진 눈꺼풀 아래서 붉고 탁한 눈동자가 허공을 응시했다. 뺨은 볼품없이 말랐고 안색은 파리했다. 창백한 낯에 코와 귀 끝만이 추위로 붉었다. 손끝으로 더듬듯 살피면 올록볼록한 흉터들와 아래로 처진 눈썹 끝이 느껴졌다.
드러나는 자세, 표정, 기세. 그러한 것들이 하나같이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었다. 주머니 속 튀어나온 송곳처럼 거슬렸다. 에녹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미간을 억지로 찡그리고 평안을 연기했다. 부득불 가시를 세우고 사위를 경계했다. 그러나 어설펐다. 바짝 긴장한 시선이 불안하게 떨렸다. 암만 날을 세워도 천성부터가 웃음이 많았다. 갈라진 입술 사이로 숨결과 감정이 새어나왔다. 아이는 감추는 것에 익숙했지만 소질이 없었다.
그는 희게 질리다 못해 푸른 낯짝을 가리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래봤자 눈을 가리고 온전히 숨었다고 생각하는 꼴이었다. 앞머리를 대강 내리고 두 손으로 자꾸 얼굴을 훔쳤다. 군청색 머리카락은 손질이 되지 않아 덥수룩했다. 들지 않는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 비뚤고 들쭉날쭉했다. 그나마도 뒷머리는 자르지 않아서 허리까지 내려왔다. 베일처럼 머리카락을 둘러 그 뒤로 몸을 감추려고 애를 썼다. 겁에 질린 야생동물 같았다.
그래도 자세는 곧았다. 숨는 것은 괜찮았지만 숙일 수는 없었다. 등을 바로 펴고, 고개를 들었다. 자꾸 내려가는 시선을 도닥여 정면을 보았다. 그래서 아이는 작지 않았다. 살이 붙지 않아 수척했지만 대신 근골이 강건했고, 움직임이 매양 컸다. 손과 발이 키에 비해 컸으며 굳은살이 촘촘히 박혔다. 곳곳에 생채기가 있었으나 심하지는 않았다. 산야와 어울러 살았구나, 짐작할 정도였다. 살갗 아래 감춰진 생기가 물씬 넘쳤다. 메마름과는 또 다른 야성이었다.
에녹은 새로 받은 옷을 몹시 아꼈다. 답답한 것이 익숙하지 않아 목 부분을 자주 매만졌더니 셔츠깃이 맨들맨들했다. 화려한 치장을 속으로는 기껍게 여겼지만 닳는 것이 못내 아까워 평소에는 간소한 차림을 선호했다. 곧 추위에 굴복해 망토를 되는대로 두르고 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그만하면 썩 단정했다. 단 신발만은 예외였다. 아이는 부츠가 익숙하지 않은지 발을 얌전히 두지 못했다. 굳은살이 빼곡한 발끝은 감각이 무뎠다. 아주 가끔은 교정을 남몰래 맨발로 활보했다.
Personality
성격
느리고 신중한 | 순종과 굴종 | 자기부정 | 미숙한 엄격 | 솔직 | 사람을 좋아하는
에녹은 보기보다 겁이 많다.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당장을 염려하고, 지난 일을 후회하기보다는 앞을 바라본다. 생존보다 중요한 건 없다. 그의 선택지는 대개 빈곤했고, 원하는 길보다 해야 하는 길을 걸어왔다.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한없이 주저하고 주저하며 느리게 나아왔다. 절제는 습관으로 굳어졌다. 얄팍한 경험 속에서 인내는 쉽게 극단으로 빠지고, 에녹은 사소한 결정에도 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아이는 순종하고 굴종한다. 그것은 곧 자기부정으로 이어진다. 스스로를 신뢰하지 않기에 타인에게 의존한다. 정성껏 다듬고 깎아낸 선택이지만,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 끝내 포기한다. 상대의 말에 기꺼이 복종한다. 부모의 말이 반드시 옳다고 확신하는 어린 아이처럼, 기실 열 살은 한창 그러할 나이다.
앞사람의 자취를 따라 무작정 걷는 것이 결국 아이답다. 답습이 해롭대도 배움은 관찰에서 시작된다. 지금은 흉내에 지나지 않지만 언젠가는 성장으로 거듭날 것이다. 대신 경계해야 할 것은 맹목적인 희생이다. 아이는 투신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길 원한다. 부족한 경험은 가치의 판단을 왜곡하거나 유보한다. 가장 소중한 것을 쉽게 팔아넘긴다. 그걸 막는 것이 보호자의 역할이겠으나, 에녹은 미처 배우지 못했다. 끝이 정해지지 않은 채, 막연한 이해와 막연한 사려에 점철되어 자신에게 할당할 몫까지 모두 소모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하여 물정 모르는 아이는 의존적이고, 충성스럽다.
그렇다면 신중함과 의심, 경계는 모두 무용한 수고일까. 에녹은 가슴 속에 정성껏 자신만의 성채를 쌓는다. 이것은 심지고, 고집이며, 그만의 엄격이다. 용납할 수 없는 선과 지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지금은 가볍고 미숙해 외압에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언젠가는 완성해낼 에녹 안의 질서다. 그는 한결같은 수긍 속에서 이따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항상 흉터를 감추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에는 솔직하다. 숨기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혹은 그러고 싶지 않아서. 에녹은 항상 느낀 대로 웃고 느낀 대로 화를 낸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억누르며, 그 사실을 당당히 드러낸다. 경멸은 두렵지만, 부끄러울 일을 한 적은 없다. 그래서 에녹은 얼굴을 가릴지라도, 쉽게 허리를 굽혀 저를 낮추지 않는다.
그는 또한 사람을 간단히 신뢰하고 사랑한다. 박애주의자와는 다르다. 에녹이 가지는 무조건적인 애정은 그런 이념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뻗어나와, 사랑으로 발현한다. 목적 없는 애정과 보살핌에 대한 기대는 목적 없는 애정과 보살핌을 낳는다. 에녹은 자신이 받기를 바라는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행한다. 그로써 너와 나,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기원한다. 자기중심적인 만족이고, 이타적인 행동이다.
Other
기타사항
2월 15일, 오르게 남동부에 위치한 바닷가 마을 일 르 셰펠에서 태어났다. 물고기를 잡고 꽃을 가꾸는 농가에서 자랐으며 가족으로는 양친과 다섯 명의 오누이가 있었다.
일 르 셰펠은 오르게의 미덕과 부정을 고루 간직한 마을이다. 한적하고 평화롭다. 그리고 배타적이다. 바닷가를 마주한 일 르 셰펠은 어업과 화훼업, 그리고 약간의 목축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절벽을 따라 놓인 철로와 간이 기차역을 두고, 싱싱한 튤립과 코스모스, 장미와 백합을 수도로 실어보내 은화를 벌었다.
에녹의 집안은 일 르 셰펠에서 수십, 수백,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일 르 셰펠의 다른 구성원도 매한가지다. 그곳은 정적이고 고요하지만, 또 일견 평화롭지만 누구에게나 안전한 곳은 아니다. 긴 세월 함께 살아온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개성은 허용되지 않는다. 모두가 세누스레트를 믿고 밤을 두려워하며 다름을 경멸한다. 그들은 친절하고 인정이 많지만 엄격하다.
에녹의 흉터는 단순한 사고였다. 일 르 셰펠과 음모와 모함, 비밀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맘때쯤 근방의 산에서 불이 크게 났었다. 먹을 게 사라지자 산짐승이 마을을 습격했고, 그 과정에서 몇몇 사람이 다쳤다. 에녹도 그 중 하나였다.
그 때 에녹을 구해준 것이 이드리스였다. 마법사 이드리스*.
이드리스는 막 마을에 당도한 이방인이었다. 그는 금세 이 아름다운 해안가 마을이 마음에 들었고, 일 르 셰펠에 정착했다. 그가 마법사인 것은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에녹도 계승을 받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환영받는 손님은 아니었으나, 이드리스는 개의치 않았다. 마을에서 겉도는 이드리스와 에녹은 서로에게 좋은 말상대가 되어 주었다.
그 무렵 에녹은 매일같이 이드리스를 찾았다. 은인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고, 이드리스가 주는 사탕이 달콤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드리스는 에녹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었다. 사소하게는 마을 뒷산의 산딸기 덤불부터 시작해서, 마을 사람들이 요새 저를 어떻게 부르는지.
불운하게도 에녹의 상처는 쉽게 낫지 않았다. 어린애 피부가 하도 약해서 그런지, 긁힌 나뭇가지나 발톱에 독이라도 있었던 건지, 아니면 애초에 상처가 지나치게 컸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우연한 사고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겼다.
흉터란 두드러지는 것이다. 그리고 일 르 셰펠은 두드러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소문은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에녹은 순식간에 괴물이 되었다. 에녹은 지워지고 괴물만 남았다.
이드리스는 많은 이야기를 알았다. 에녹은 그에게서 글자를 배우고 역사를 들었다. 그 중에는 금지된 이야기도 많았다. 현자의 시대, 나르메르와 여덟 신, 북쪽 땅에 숨죽인 마법사들. 모든 것이 모호했고 동화나 다름없었지만 분명 아름다웠다. ‘세상에는 마법이 있어, 에녹. 진짜 마법이 말이야. 빛을 그리고, 물을 빚는 아름다운 마법이 정말로 있어.’ 이드리스는 조금 괴로워 보였다. 에녹이 완전히 마법 이야기에 빠져 버렸을 때, 그는 조용히 물었다. ‘마법사가 되고 싶지 않니?’ 에녹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명의 이방인이 찾아와 에녹에게 물었다. 마법을 원하느냐고.
그리고 몇 달 뒤, 에녹은 나티에르에 입학한다.
* 이드리스Idrīs : 1248년 기준 25세, 남성. 유약하고 다정한 성정. 강단이 없고 유순해 눈에 띄거나 남의 의사에 거스르는 일은 저지르지 못한다. 한때 마법사였으나 에녹에게 마법을 계승하고 마법을 잃었다. 일 르 셰펠에서 5년 가량을 머물렀으며, 에녹이 나티에르에 입학한 후 오르게의 수도 몽펠리아로 도망치듯 이주했다. 에녹과 유일하게 이어져있는 과거의 사람. 종종 편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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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운 것을 싫어한다. 따뜻한 남부 지방의 해안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곳의 추위는 생소했고, 한편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발이 떨어질 듯 어는 감각이나 귀가 추위로 달아오르는 것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북부에 온 후부터는 자주 열이 나고, 항시 기침과 콧물을 달고 산다.
-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추위와는 별개로, 몸 속의 활기를 주체하지 못한다. 밖을 뛰어다니는 것은 그에게 있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투박한 돌벽과 낮은 흙담, 아담한 집에 둘러싸여 자라온 에녹은 높은 기둥이 낯설다. 건물은 크고 높으며 반대로 숲은 턱없이 작다. 시간이 비면 에녹은 주로 안뜰이나 호숫가 같은 곳에서 뛰어다녔다. 갇혀 있는 열기를 떨쳐내기 위해서. 그럼에도 부족하다. 아이는 종종 바다를 그리워했다.
- 추위로 인한 감기 증상을 제외하면 몹시 건강하다. 북쪽에 오기 전에는 잔병치레를 한 적이 거의 없다. 생활이 규칙적이고, 몸을 움직이는 일도 꼬박꼬박 잊지 않는다. 해가 뜨기 전부터 침대에서 일어나서 호숫가를 달린다. 보기에는 비쩍 말랐지만, 식욕이 좋고 편식도 하지 않아 곧 키도 크고 살도 붙을 것으로 에녹은 기대하고 있다.
- 또래 중에서 말이 살짝 늦되다. 글을 보면 문장력이나 어휘 구사력이 나쁜 것은 아니고, 대화가 낯선 탓이었다. 나티에르에 온 후 감기를 내내 달고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변성기가 아직 오지 않아 맑고 비음이 살짝 섞인 목소리. 발음을 바로 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 때문에 문장은 그럭저럭 괜찮지만 말의 속도가 느리다. 단어 사이사이를 끊어 누르듯 말한다. 말을 할 때면 왼손 검지로 오른손 손바닥을 찬찬히 두드리는 습관이 있다.
- 말투가 오락가락한다. 나, 저, 너, 당신, 그쪽, 야... 존대를 어떻게 써야 하고 또래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편하게 말을 해도 좋은지, 이름을 불러도 되는지, 성을 불러야 하는지. 아니면 애칭을 지어도 괜찮은지. 그래서 자주 어투가 바뀌고, 호칭이 바뀐다. 심하게는 한 문장 안에서도 버벅거리기도 한다.
- 노래는 훌륭하지는 않아도 들어줄 만 하다. 종종 근본 없는 노랫가락을 마구잡이로 지어내 흥얼거린다.
- 발끝으로 맨땅을 자주 걷어찬다. 버릇이다. 기쁘거나 화나거나, 주로 고마울 때. 아니면 답답할 때. 매사에 땅을 찼고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건 아마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에녹은 표현에 익숙하지 않았다.
- 상처에 민감하다. 피나 다치는 일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영영 낫지 않는 것이 두렵다. 생채기나 멍 따위에는 오히려 태연하다. 깊은 자상이나 화상을 극도로 기피하며, 그러한 상황을 가정하거나 맞닥뜨릴 때 현저한 불안 증세를 보인다.
- 종교. 백지다. 나르메르 뿐만 아니라 세누스레트에 대한 신앙심도 그리 깊지 않다. 종교, 식전 기도, 이런 시간이면 꾸벅꾸벅 졸기가 일상이다. 어떠한 반감이 있다기보다는, 아주 귀찮고 성가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개선의 가능성은… 글쎄.
- 소환술과 마법의 역사에 흥미가 있다. 하지만 공부에는 영 재능이 없어서,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아직 열 살이지만 퍽 걱정이 많다.